['통화녹음 금지법에 갤럭시 유저 '화들짝'…법적 정의 모호한 음성권
'인격권 일부' 판례 있지만…전문가 "사회적 논의 필요해"]
삼성전자가 새로운 갤럭시 'Z폴드4'와 'Z플립4'를 공개한 가운데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삼성딜라이트샵을 찾은 고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당사자 간의 통화나 대화 내용 녹음 시 참여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이른바 '녹음금지법'이 발의되면서, '음성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디지털 환경 변화로 사적 대화의 유포 가능성이 커지면서 음성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법적 정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음성권 보장' 외쳤지만…"그래서 그게 뭔데?" 법적 정의 없어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지난 18일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동의 없는 통화·대화 녹음을 법으로 제재해 음성권을 보장하는 게 법안의 핵심이다. 현행법상 제3자의 대화 녹음·청취는 처벌 대상인 반면 당사자 간 녹음은 동의가 없더라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개정안은 대화 참여자 전원 동의 없이는 당사자 간 녹음이 불가하다는 조건을 포함, 위반 시 최대 10년형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여론은 대체로 비판적이다. 당사자 간 대화나 통화에도 전원 동의 조건이 붙을 경우, 공익 제보나 피해 입증을 위한 법적 증거물 등으로 활용될 수 있는 범위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몰래 녹취해 이를 범죄 등에 악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녹음 행위만을 형사 처벌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법안 통과가 불투명하지만 현실화할 경우 통화녹음 기능을 지원 중인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크다.
무엇보다도 음성권 자체가 갖는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음성권'이라는 표현이 법에 명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정의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단순히 '개인 음성에 대한 소유권'으로 보기엔 그 범주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자가 취재 목적으로 특정 취재원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할 경우 이를 기자의 '취재 자산'으로 볼지, 발화 주체인 취재원 개인만의 고유한 '소유권'으로만 볼지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기자가 갖는 취재 자산으로서의 활용 권리를 음성권 범주에 포함 가능한지 등의 여부도 논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음성권 논의 진전돼야…법적 정의 필요"
동의 없는 녹음을 금지하는 국가들도 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플로리다·매사추세츠·미시간 등 13개 주(州)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녹음이 불법이지만 워싱턴 DC와 뉴욕주 등에서는 가능하다. 독일·호주·캐나다 등은 상대방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보호의 한 영역으로 평가하는 것일 뿐 음성권 자체를 구체화한 논의는 부족하다.
국내에서도 음성권을 인정한 법원 판례는 있다. 다만 이를 따로 분리해 정의하는 대신 인격권의 일부로 표현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해 함부로 녹음·재생·녹취·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는 인격권에 속한다'는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음성권 정의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는 "음성권을 개인적인 영역 속에서 개인정보 인정·보호 취지로 관련 기준을 세운 국가도 있지만 음성권을 따로 분리해 구체화한 내용은 없다"며 "음성권은 국민 스스로 인정받을 권리라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만큼 명확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예를 들어 특정인 목소리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을 만들었다면, 그 특정인의 음성권 범주에 속할지 아닐지 애매한 상황이지 않겠느냐"며 "영상만큼 민감하고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성임에도 아직 구체적인 권리를 설정하지 못했다. 지금이 논의를 시작할 적절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음성권을 개인의 배타적인 권리로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음성권을 배타적인 권리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행동 자유를 상당히 제한하게 된다"며 "(음성권을) 어떤 범위까지 자유롭게 허용하고 금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확립되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처럼 (녹취) 수집 자체를 형법으로 규제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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