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로 아들(29)을 잃은 아버지 조모씨(60)가 지난 11일 강원 강릉시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사무실에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조해람 기자
지난 4월 초 강원 강릉시 경포호수에서 대형 벚꽃축제가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처음 열린 벚꽃축제에 모인 수많은 청년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웃고 떠들었지만, 강릉에 사는 조모씨(60)는 아들의 유품인 모자를 눌러쓰고 그 곁을 지나쳤다. 지난 11일 강원 강릉의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사무실에서 만난 조씨는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조씨의 29살 아들은 벚꽃축제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3월27일 오후 1시38분쯤, 동원그룹 물류 계열사 동원로엑스의 경기 이천 물류센터에서 입식지게차 전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힘든 취업준비 기간을 거쳐 사무직 정직원으로 입사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같은 센터에서 일하던 아들 친구의 연락을 받고 강릉에서 이천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조씨는 ‘아들이 숨졌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은 센터에서 조금 떨어진 창고 앞 내리막길에서 사고를 당했다. 창고에 반송물품을 내려놓고 센터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리막길을 운행하던 지게차는 도로경계석을 들이받으며 넘어졌다. 지게차에 깔려 크게 다친 아들은 끝내 숨졌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경황 없이 장례를 치른 조씨는 아들이 어쩌다 사고를 당했는지 알고 싶었다. 회사는 사고 원인과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조씨는 회사에 찾아가 직접 자료를 구하고, 지게차와 안전관리에 관한 정보를 모았다.
사고 경위를 알아볼수록 조씨에겐 의문만 쌓였다.
사무직인 아들은 직접 지게차를 몰아선 안 됐다. 하역은 하청업체 담당 작업이었다. 아들도 동원로엑스 입사 전 이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지게차를 몬 적이 있지만, 입사 후엔 사무관리와 전산관리, 고객 클레임 관리 등을 배정받았다. 당연히 지게차 관련 안전교육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여러 차례 지게차를 몰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직원들도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며 지게차 운전을 해 왔다고 유족은 말했다.
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로 아들(29)을 잃은 아버지 조모씨(60)가 지난 11일 강원 강릉시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사무실에서 “원가 절감(지게차) 계산”이라고 적힌 아들의 업무용 메모를 들고 있다. 조해람 기자
신입인 아들이 누군가의 지시 없이 업무에도 없는 지게차 운행을 할 수는 없다고 조씨는 생각했다. 숨진 아들의 휴대전화에는 지게차 운행 전후 누군가에게 업무를 보고한 정황이 남아 있었다. 아들은 지난 2월4일 상사에게 ‘지게차를 타다가 박스가 파손됐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조씨가 확인한 사고 당일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들은 1층에서 물품을 지게차에 싣기 전 휴대전화 카메라로 반송품을 촬영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사진을 찍은 건)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보고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조씨는 말했다.
사고 이후 회사 관계자들은 지게차 운행 지시 여부를 묻는 조씨의 질문에 ‘업무가 아니다’라며 얼버무릴 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조씨는 “아들은 지난해 12월 탑차를 운전해 인근에 기름 배달을 나가기도 했다”며 “기름배달 같은 잡다한 업무까지 시키면서 아들의 지게차 운행을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의문은 더 있었다. 아들이 탄 입식지게차는 원래 경사로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제품이었다. 입식지게차는 바퀴가 작고 통상 브레이크 없이 가속페달을 밟거나 떼는 식으로 가속·정지를 조작한다. 이 때문에 전도 위험이 커 주로 평평한 실내에서 작업하게 돼 있다. 그러나 아들이 사고를 당한 곳은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었다. 사고 당시 안전모나 안전화도 착용하지 않았다. 유족이 사고 당일 CCTV를 보니 모든 직원이 안전보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지난 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가 일어난 동원로엑스 경기 이천 물류센터의 경사로에서 차들이 내려오고 있다. 유족 제공
사고가 난 뒤에야 센터 측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관리직원 지게차 운행 절대 금지’라는 공지를 내렸다. 사고가 난 내리막길에는 고용노동부 지시로 뒤늦게 ‘입식지게차 운행금지’라는 형광색 글귀와 과속방지턱이 설치됐다.
동원그룹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계열사 직원 사망 소식을 뉴스 보고 아는 게 말이 되느냐” “(사내)게시판에 아무 말도 없고 쉬쉬하면 모를 줄 알았나” 등 공분이 이어졌다. 유족도 회사가 책임을 피하고 사고를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해당 게시판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경조사를 올리는 곳으로 회사가 관리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년세대 취업난이 계속되며 조씨 아들 또래의 많은 청년이 물류센터로 모여들고 있다. 202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생활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단일품목을 다루는 물류센터 종사자의 72.0%가 30대 이하였다. 쿠팡 등 종합판매물류센터도 53.6%가 30대 이하 직원이었다. 하지만 늘어난 규모에 비해 안전관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청년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2016~2020년 창고업·기타보관업에서는 총 732명의 재해자가 발생했다.
조씨의 아들도 2년 동안 5번의 자격증 시험을 치를 정도로 성실하게 취업을 준비했다. 대기업 취업 후 고된 직장생활에도 가족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열악한 기숙사에 사는 아들이 안쓰러웠던 조씨가 원룸을 얻어주겠다고 했을 때도 아들은 거절했다. 아들은 절약하며 돈을 모아 스스로 원룸을 계약했다. 사고 전날인 지난 3월26일이었다.
3월27일 지게차 전도 사고로 아들(29)을 잃은 아버지 조모씨(60)가 지난 11일 강원 강릉시 노무법인 참터 영동지사 사무실에서 아들의 입사 축하 카드를 읽고 있다. 조해람 기자
조씨의 아들을 아는 이들은 그를 성실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아들과 함께 일한 협력업체 직원은 조씨에게 “(아들이)인사성도 바르고 일도 확실하게 처리해서 늘 고맙게 생각했다”며 “모두 안타까워 울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퇴사한 직원은 “어린 나이에 일 끝나고 알바도 하며 열심히 살았다”며 “정직원이 됐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했다.
“아들이 극락왕생해서 다시 세상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들을 못 알아보더라도….” 아들이 한 번이라도 꿈에 나타나길 바라며 조씨는 매일 아들의 방에서 잔다. 왜 아들이 업무에도 없는 지게차 운행을 해야 했는지, 입식지게차가 갈 수 없는 곳에 운행하도록 누가 지시·방조했는지, 전반적인 안전관리가 미흡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조씨는 궁금하다. 조씨는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수사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조씨는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한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기업들이 거짓말하는 상황에 처벌수위를 낮추면 산재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적어도 안전하게 퇴근해 집으로 돌아갈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게차 운행 업무를 하면 안 되는 분이고, (사고가 난 길은)입식지게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었다”면서도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회사 자체적으로)업무 지시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안전관리를 완벽하게 하지 못해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한 점에 깊이 반성하고, 유족과의 대화와 관계기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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