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산 타기 좋은 계절입니다. 전국의 국립공원에는 7월부터 푸릇푸릇해진 산을 즐기러 등산객들의 발길이 본격적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국립공원 직원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습니다.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많아질수록 불법행위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그중 가장 골머리를 앓는 건 정규 탐방로를 벗어나는 불법산행입니다.
■ 끊이지 않는 불법산행
지난 주말, 취재진이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과 불법산행 단속에 동행했습니다. 단속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등산로 한편에서 주인 잃은 배낭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배낭 주인은 계곡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등반이 너무 힘들어서 지쳐가지고, 이거는 변명이니까요. 어쨌든 제가 잘못한 건 알고 있습니다."
탐방로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계곡에서 상의를 벗고 한가롭게 목욕을 하던 등산객은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탐방로를 벗어난 것입니다. 단속에 걸린 등산객은 서둘러 옷을 챙겨 계곡을 벗어났습니다.
"이 정도는 약과죠. 더한 분들은 출입금지구역에서 취사도 하세요." |
화면제공 :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
사진에 보이는 곳은 지난 3월 설악산 상봉입니다. 해발 1,200 미터 고지로 천연기념물인 산양과 삵이 살고 있어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마주친 3명의 등산객. 이들은 설악산의 절경을 벗 삼아 버젓이 음식을 해 먹고 있었습니다. 버너와 냄비, 그릇까지 알뜰하게도 챙겨왔습니다.
"과태료 1명만 물게 해주세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안돼요. 만약 불났으면 징역 7년이에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절벽을 올라간 단속대원조차도 황당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특히, 이때는 건조한 날씨 속에 산불 위험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산불이 일어나 대형 재난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던 위험한 상황이지만, 단속에 걸린 등산객들은 뻔뻔하게도 선처를 요구했습니다.
공룡능선 인근에서 불법산행을 하다 적발된 등산객(화면제공 :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어디까지 가시려고 했어요?"
"화장실 가려고 들어왔어요."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4시. 공룡능선 인근의 출입금지구역에서는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단속반에 포착됐습니다. 탐방로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이들은 어디까지 가려고 했냐는 단속반의 물음에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렇듯 지난해 불법산행을 하다 단속에 적발된 건수는 무려 1,208건에 달합니다. 2018년 703건에 비하면 약 1.7배나 증가한 수치죠. 코로나 19 유행 이후 등산이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국립공원을 찾은 등산객은 3천8백만 명에 달합니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불법산행도 같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설악산 국립공원에서는 두 달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70여 건에 달하는 불법 산행객들이 단속에 적발됐습니다. 설악산에서만 한 해 평균 300여 건이 넘는 불법산행이 적발된다고 하니 녹음이 우거지는 7월부터 단풍이 물드는 11월까지 본격적인 등산철이 시작되면 단속에 적발되는 건수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불법산행, 목숨을 잃는 지름길
불법산행을 금지하는 이유는 산양과 삵 등 동식물 보호 때문만은 아닙니다. 불법산행로에는 제대로 된 안전시설이 없어 위험합니다. 취재진이 단속에 동행했을 때도 험한 산세 탓에 단속반조차 제대로 길을 찾기 어려운 수준이었습니다.
화면제공 :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실제로 지난달 설악산에는 불법산행을 하던 50대 남성이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휴대전화 전파도 제대로 터지지 않는 출입금지구역이었기 때문에 위치 파악이 어려워 구조에만 23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궂은 날씨와 지형 탓에 헬기도 접근하기 쉽지 않아 구조대원들이 남성을 부축해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지난해 설악산에서 발생한 8건의 사망사고 중 7건이 불법 산행로에서 벌어진 만큼 불법산행은 사고로 이어지는 지름길인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탐 #비법정탐방로 등 불법산행 정보 공유도 활발
그럼 제대로 된 탐방로도 없는 곳을 등산객들은 어떻게 알고 들어가는 걸까요? 인터넷에서 불법 산행로를 뜻하는 '비법정탐방로'나 '비탐'을 검색하면 블로그 등에서 수많은 불법산행 후기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SNS에서는 사진과 함께 '#비탐' 해시태그가 붙어 있는 게시글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탐방로를 벗어난 산행은 명백한 불법 행위이지만, 인터넷과 SNS에서는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을 다녀왔다는 일종의 인증처럼 여겨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취재진이 등산객들이 모인 SNS 오픈 채팅방에서 불법등산로 추천을 부탁하자 단 몇 분 만에 수많은 불법등산로 코스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지금도 불법등산로 정보는 아무런 통제 없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 " 등산객들 인식 전환이 필요해..."
정규 탐방로를 벗어난 불법산행은 자연공원법 제28조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단속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취재진과 단속에 나선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의 직원은 모두 190여 명. 이마저도 비번 근무자를 제외하면 하루에 120여 명이 근무하는 상황입니다. 설악산을 4개 구역으로 나눠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400제곱킬로미터, 여의도 면적의 137배에 달하는 설악산을 모두 단속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과태료를 천만 원으로 올린다고 한들 불법산행이 없어질까요? 저희는 아니라고 봐요. " |
과태료를 늘린다면 해결될 수 있을까요? 불법산행을 하다 적발될 경우 1차 20만 원, 2차 30만 원, 3차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하지만 단속에 나선 대원들은 과태료 인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아무리 과태료를 올리더라도 불법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단속 대원들 모두 불법산행 근절을 위해서는 등산객들의 인식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매년 증가하는 불법산행 단속 건수를 보면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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