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이미지투데이]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앞두고 있는 송경섭 씨(38)는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10년 이상 집밖에 나오지 않은 은둔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수도권 소재 대학 토목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자 자신을 책망하며 집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현재 체중은 70kg대지만 한때 150kg까지 몸무게가 불었다. 송 씨는 “종일 집에서 먹거나 인터넷 방송을 보면서 현실을 회피했지만, 자신감만 더욱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며 은둔 생활 당시를 회상했다.
송 씨의 은둔 징후는 10대 후반부터 잠재해 있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그를 고3 담임 교사가 이상하게 여기고 면담을 진행했지만,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와 투병 중인 어머니와 지낸다는 송 씨의 설명을 듣고 가정 문제로 치부하고 지나쳤다. 송 씨는 “당시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도 없는 시절이었다”며 “본인만의 문제가 아닌데, 남과 비교하고 자책하면서 내 잘못만으로 여겨 방치해 온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송 씨와 같은 은둔 고립 상태에 놓인 청년은 전국적으로 수십 만 명 규모로 추정되지만 기관마다 나이 기준 등이 달라 정확한 수치는 알기 어렵다. 국무조정실에서 지난 3월 발표한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는 만 19~34세 청년 중 약 2.4%(24만4000명)이 은둔형인 것으로 파악했다. 2022년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는 만 19~39세 청년 중 은둔·고립 비율이 4.5%로, 서울시에만 최대 12만 9000명의 은둔형 청년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통계는 제각각이지만 조기 발굴 필요성과 전문 상담체계 구축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다. 2020년 광주광역시 조사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46%가 24세 이하 청년기 처음 은둔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은둔 성향은 내재해 있다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 조기 발굴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청년정책연구실장은 “청소년기에 갖고 있던 은둔 성향이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취업이나 진학이 안 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교 졸업 후 재수한다고 하고는 입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인간관계마저 단절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20여년 청소년을 상담해 온 하영자 광주시 광산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청소년기에 은둔 성향을 조기 발굴해야 회복도 빠르다”며 “아직 고정된 틀이 갖춰지지 않은 시기에 상담을 해야 마음을 열고 사회로 진출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둔고립 청년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체계는 미비한 실정이다. 3년째 은둔 중이라고 밝힌 장영걸 씨(22)는 “몇 년 전 은둔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계 기관에 연락했지만 당시 학교에 적을 두고 있어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장 씨는 거주지인 대전에서 서울을 오가며 한 민간 지원센터의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이같은 상황은 이웃나라 일본과 대비된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09년부터 히키코모리(‘틀어박힌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일본어) 지원을 위해 전문적 상담창구인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설립하기 시작해 현재 79곳을 운영 중이다. 한국은 작년 4월 운영을 시작한 광주광역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가 유일하다. 백희정 광주시 은둔형외톨이지원센터 사무국장은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센터에 와서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에 복귀할 때까지 상담에서부터 모임·교육까지 장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반응이 좋다. 개소 이후 지난해 말까지 8개월간 308여명이 센터를 찾았다“고 설명했다.
장 씨와 같은 은둔 청년을 선제적으로 발굴·지원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청소년복지 지원법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은둔형 청소년이 특별지원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미 편성된 예산으로 은둔형 외톨이까지 지원하기에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 위기청소년에게 생활지원, 치료비, 심리검사 상담비, 학업지원비 등을 현금 및 물품으로 지원하는 제도다.
김기현 실장은 “주요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은둔·고립 청소년 문제가 정책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으며 그 심각성도 외면받아왔다”며 “부모상담, 학습지원, 자립지원 등 종합서비스 지원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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