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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훼뉴스] 공덕동 식물유치원 작가 백수혜
  • 쿠궁쿠궁 브론즈 관리자
  • 2023.06.28 08:05 조회 212

‘유기 식물’을 구조해 분양합니다

백수혜

영국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에 정착, 버려진 식물을 데려다 곱게 키워 입양 보내는 일명 ‘식물구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식물구조 활동을 정리한 책 《여기는 ‘공덕동 식물유치원’입니다》를 펴냈다. 

재개발 단지를 가본 적 있는가. 허물어질 듯 서 있는 건물 사이로 버려진 집들로 가득한.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폐허가 된 그런 공간 말이다. 10여 년간 해외에서 지내며 미술을 공부한 백수혜 작가는 그런 재개발 단지에서 물건 주워 오는 일을 즐겨 한다. 제법 쓸 만한데 버려진 집기는 그에게 삶의 영감을 준다. 잡초처럼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처지에 놓였던 물건이 그에게는 소중한 보물과 같다.

어느 날 그는 쓰레기 더미에서 뿌리 내린 알로카시아를 마주하게 됐다. 분명 누군가의 집, 볕 잘 드는 창가에서 예쁨받고 자랐을 텐데, 이사 가는 데 짐이 된다는 이유로 버려졌을 것. 빗물에 의지해 뿌리내린 모습이 마치 영국에서 유학 생활할 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로 배척받고 차별받아온 시간.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버림받은 것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화분 없이 내팽개쳐져도 해를 향해 꼿꼿이 일어나는 식물의 얇은 줄기에서 강한 위로를 받는가 하면, 버려졌지만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모습에서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도 넓어졌다. 

이후 백수혜 작가는 버려진 식물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화분에 옮겨 심어 잘 키우고 가꿔 새로운 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그가 요즘 하는 일이다. 그의 활동은 SNS를 통해 일명 ‘식물구조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그는 이 활동을 확장해 ‘공덕동 식물유치원’도 열었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자라면 졸업식을 하듯, 잘 키워낸 식물을 누군가의 집으로 입양 보낸다.

백 작가는 식물을 원생에 비유해 ‘친구’라 호칭한다. 지금까지 유치원에서 300여 포기의 ‘친구’를 졸업시켰다. 집에서 쉽게 키우는 알로카시아부터 장미허브, 비비추 외에도 길에서 흔하게 보는 애기똥풀, 쑥, 구절초 등 30종이 넘는 식물을 구조하고 분양했다. 그의 꿈은 언젠가 공덕동 식물유치원 동창회를 열어 졸업한 친구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다 같이 모이는 것.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식물유치원에서 백수혜 작가를 만났다. 그가 봄날 들판에 핀 민들레처럼 해사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재개발 단지에 가면 저처럼 물건을 주워 가는 사람이 많아요.

대부분 고철이나 전선, 고미술품을 가져가는데

식물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은 무가치하게 여기니까요.

고철만큼 값이 나가진 않아도, 식물도 하나의 생명이기에

가치 있는 존재라 생각했어요.

자그마한 마당 안에 식물이 참 많네요. 알로카시아, 장미허브, 작약도 보이고… 이름 모를 식물도 많아요. 다 구조해 온 것들인가요.
“최근에 유치원 졸업식이 있어서 200포기 이상 입양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 남은 녀석들입니다. 구조한 것도 있고, 제가 산 것도 있고, 또 SNS로 알게 된 분이 보내온 녀석도 있죠. (화단을 가리키며) 저기 저 큰 식물은 트럭 끌고 가서 구조해 온 주목이고요, 매년 붉은 꽃을 피우는 작약, 머루랑 제라늄도 있어요. 단풍나무 모종, 씨앗부터 키워온 레몬…. 아, 이 녀석은 알아보려나? 셀러리를 먹고 남은 밑동을 잘라서 다시 키우고 있어요.”

셀러리도 이렇게 화분에서 키울 수 있군요? (풀이 무성한 식물을 가리키며) 길거리에서 자주 보던 식물인데요. 이름이….
“집 앞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해 온 비비추예요. 일반 가정보다는 건물이나 빌라 주변, 도심 공원에서 녹지사업 차원으로 키우는 조경식물이죠. 화원에선 잘 안 팔고 조경 화훼단지나 가야 볼 수 있는 녀석이에요. 100포기 이상 구조해서 지난번 졸업식 때 모두 보내고 지금 남은 건 저 친구 하나예요. 비비추를 구조하고 이듬해 봄에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신기해했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 집 앞에 비비추가 많이 피었는데, 잡초인 줄 알고 다 뽑아버렸다고 해요. 이렇게 화분에 심어서 키울 수도 있구나, 처음 알았다고.”

들이나 산에서 자주 보던 개고사리나 강아지풀도 있네요. 잡초라 생각하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화분에 심으니 색다르게 보입니다. 식물 구조할 때 기준이 있나요?
“엄청 고민 많이 해요. 식물을 잘 모르니까 잡초도 구별 못 하고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요. 강아지풀이 잡초인가? 그렇다면 민들레는? 잡초라는 말 자체가 식물 분류에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데리고 온, 소위 잡초라 부르는 이 녀석들도 다 이름이 있는 친구들인 거죠. 잡초란 말은 어떤 식물이든지 내가 키우는 식물에 반해서 자라는 것들을 통칭한대요. 내가 알로카시아를 키우는데, 어떤 귀한 식물이 와도 알로카시아의 성장에 방해가 되면 잡초인 거죠.”

그동안 얼마나 들풀에 무심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제가 쑥도 키워서 입양 보냈어요. 사람들이 쑥이 자란 모습을 거의 못 봤대요. 여린 잎이 나면 뜯어서 먹고, 자라면 잡초라고 베어 내니까요. 저는 쑥이야말로 ‘K허브’가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또 제가 키우는 식물 중에 개똥쑥도 있는데, 향이 엄청 좋아요. 허브농원에 가면 라벤더나 로즈메리 같은 해외 식물은 많은데 개똥쑥밭은 본 적이 없거든요. 정작 이름도 모르면서 잡초라 생각하고 무시해온 거죠.”

재개발 폐허를 뒤지며 식물을 구조해 키우고 입양 보내는 ‘식물구조대’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유기 식물 구조 프로젝트라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식물을 구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평소에도 줍는 활동을 좋아하긴 했는데, 식물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여기 있는 탁자나 의자도 모두 재개발 단지에서 주워 왔어요. 쓸 만한데 버리고 간 것들이죠. 둘레둘레 걷다 보면 많이 보여요(웃음). 재개발 단지에 가면 저처럼 줍는 사람이 많아요. 대부분 고철이나 전선, 고미술품을 챙겨 가는데 식물을 주우러 다니는 사람은 없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들은 무가치하게 여기니까요. 고철만큼 값이 나가진 않아도, 식물도 하나의 생명이잖아요. 누군가 소중하게 키우던 식물은 가치 있는 존재라 생각했어요. 여기 있는 모든 식물이 사람 손이 닿지 않아도 살아난, 근성이 대단한 녀석들이에요. 비비추나 작약은 밖에 그대로 둬도 죽지 않아요. 이파리가 죽은 것처럼 보여도 겨울에 동면했다가 이듬해 봄 되면 다시 싹을 틔워 꽃을 피우죠.”

백수혜 작가가 제일 처음 구조해 온 알로카시아(왼쪽)와 붉은 꽃을 피워낸 제라늄.
백수혜 작가가 제일 처음 구조해 온 알로카시아(왼쪽)와 붉은 꽃을 피워낸 제라늄.
3월 초에 구조해 온 꽃기린. 뼈대만 앙상했던 게 어느새 이파리를 내고 붉은 꽃망울을 맺었다.
3월 초에 구조해 온 꽃기린. 뼈대만 앙상했던 게 어느새 이파리를 내고 붉은 꽃망울을 맺었다.

처음 구조한 식물과의 만남을 기억하나요.
“알로카시아가 시멘트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며칠 전 내린 빗물에 의지해 싹을 내리고 있더라고요. 여기 두면 100% 죽겠구나, 1%의 확률이라도 내가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데리고 왔어요. 그러다 보니 장미허브도, 다육식물도 주워 오게 되면서 식물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초록 시야에 눈을 떴다고 할까요.”

식물에서 생명력을 봤군요.
“최근에 구조해 온 꽃기린은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식물이에요. 3월 초에 구조하러 갔을 때만 해도 말라죽어가던 게 어느새 이파리를 내고 붉은 꽃을 피우더라고요. 생명력이 대단하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고 식물이 안 자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의 관심이 없으면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덩굴도 그렇고 잡초도 사람 발에 밟히지 않는 한 스스로 생을 이어가요.” 

처음 알로카시아를 가지고 올 때만 해도 ‘초보 식집사’였다고요. 어떻게 식물을 키워나갔나요.
“초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식물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알로카시아의 이름도 몰라서 인터넷에 ‘잎이 넓은, 카페에서 자주 보는 식물’이라고 검색까지 했을 정도니까요(웃음). 처음에는 인터넷에서 사진 검색으로 식물 이름을 찾아보다가 ‘모야모’라는 앱을 알게 됐어요. 식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사람들이 댓글로 이름을 알려주는데 제법 잘 맞아요. 그러면서 점점 키우는 방법까지도 하나하나 배우게 됐죠.”

백 작가님을 보고 식물 구조 활동을 하는 분도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식물 구조 시 주의점이나 식물을 키우기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면.
“식물을 구조할 때 흙에서 뿌리를 조심해서 캐어 내야 해요. 뿌리가 다치면 구조해도 살리기 어렵거든요. 또 식물이 마를 수 있으니 젖은 신문지로 싸서 데려오면 좋고, 구조하고 나서는 뿌리를 충분하게 물에 적셔줘야 잘 자랄 수 있어요. 식물 키우기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하나의 팁이라면 수경재배를 추천하고 싶어요. 뿌리의 흙을 깨끗하게 씻어서 물에 넣어두면 잘 자라죠. 여행 갈 때도 물 줄 걱정 없어 편하고요. 아니면 화분 밑에 물그릇을 둬서 저면관수로 키우는 방법도 있어요. 필요한 만큼 뿌리가 물을 끌어가니까.”

구조해 온 식물이 하나둘 늘어가며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열게 되었다고요. 식물에게 유치원이라니, 발상이 재밌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개 정도만 키워야지 했는데, 비비추를 100포기 이상 구조하고 보니 덜컥 겁이 났어요. 알로카시아도 감당 안 될 정도로 자라고요. 고민하던 중 주변에서 이런 사연을 SNS를 통해 사람들과 나눠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트위터에 식물만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어요. 계정 이름도 ‘식물구조대’라는 거창한 말을 쓰기엔 아직 부족한 것 같고, ‘보육원’이라고 하기엔 의미 전달이 약하고요. 그래서 새싹처럼 자라는 모습을 어린이에 비유해서 식물유치원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식물 구조 활동을 시작하고 식물유치원 문을 열면서 삶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매년 꽃피우는 식물을 보며 식물과의 인연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고요.
“10년 가까이 해외 생활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가는 이 삶이 괜찮은 건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게 아닌가, 고민했어요. 그러다 제가 구조해 온 비비추가 이듬해 꽃피우는 걸 보면서 알았죠. 식물은 각자의 시간 안에서 성장하는구나,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 나만의 시간으로 꽃을 피우자고요. 숲을 보면 나무의 키가 비슷비슷하잖아요. 혼자 유독 크게 자라면 벼락을 먼저 맞는다고 해요. 저는 작가로 살면서 특이하고 남다른 삶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평범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삶의 태도를 식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책에 이런 말을 썼다. “이 프로젝트는 사실 식물들이 시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이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나를 이끌어주어서, 우리와 함께 살아보자고 내게 손 내밀어주어서 시작된 것이다. (중략) 식물을 구조한다고 삶이 크게 변하진 않지만, 꾸준한 책임감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라고.

그는 길에 버려진 작고 볼품없는 식물 한 포기도 허투루 바라보지 않는다. 어느 한때는 사랑받고 자랐음을 알아봐주고, 풀 한 포기에도 이름이 있음을 기억해주며, 그들이 새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그의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식물 입양에 기꺼이 동참하는 이들이 있어 그는 오늘도 공덕동 식물유치원에서 행복을 느낀다.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모이면 버려지는 생명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그의 행복에 거름이 되어준다.

“작고 소중한 마음들이 모이면 큰 움직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당신이 있어 지속할 수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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