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살인 피의자 김 씨가 갈아입을 옷 등을 담은 손가방을 들고, 범행을 위해 피해자 주거지에 침입하는 모습.
50대 남성 박 모 씨. 다른 지역 출신으로 제주에 와서 지내던 그에겐, 2018년부터 우연히 알고 지내던 여성 A 씨가 있었다.
A 씨는 제주에서 유명한 식당을 경영하는 대표였다. 식당은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잘 알려져, 본점 외에 지점을 둘 정도였다.
A 씨에게 상당한 재산이 있음을 알게 된 박 씨는, 이 여성에게 접근해 수 년간 신뢰를 쌓았다. 박 씨는 식당 운영에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A 씨 가까이에서 환심을 샀다.
수법은 이랬다. 박 씨는 '지인 소유의 토지'를 A 씨 식당의 담보로 제공했다. 또, 자신이 관리하는 종중 소유 토지를 무단으로 매각해, 본인이 재력가인 양 과시하기도 했다. 이를 들어 자신이 식당 공동 투자자이자 '관리 이사'라며, 식당에 상당한 지분이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식당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던 박 씨의 속임수는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A 씨는 박 씨의 기망 행위를 알아챘다. 여기에 박 씨가 A 씨에게 빌린 수 억대의 돈도 갚지 않으면서 사이는 나빠졌다.
A 씨의 신뢰를 잃어버린 박 씨는 더는 식당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이것이 범행을 계획한 발단이 됐다.
■ "아파트 분양권·식당 운영권 줄게"…고향 후배 끌어들여 '살해 공모'
강도살인 피의자 김 씨가 피해자 주거지 출입문 비밀번호를 파악하기 위해, 택배기사로 위장해 침입하는 모습.
남편이 없는 A 씨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공부하며 지내는 대학생 딸들은 식당 운영이나, 어머니의 재산 등 경제 활동 내용을 자세히 알진 못했다. 박 씨는 이 점을 노렸다.
박 씨는 식당 주인 A 씨가 죽거나 크게 다쳐서 식당 운영을 못 하게 되면, 자신이 식당 운영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란 꿈을 꿨다. 아무것도 모르는 A 씨의 딸들은 잘 회유하면 될 거라는 계획이었다. A 씨에게 진 수억 원대 빚도 피하고, A 씨의 재산 상당량도 자신이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범행을 계획한 박 씨는 최근 안면을 트면서 알고 지내던 고향 후배, 김 모 씨와 이 모 씨 부부를 떠올렸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던 이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약속하며 범행에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박 씨는 이들 부부에게 "채무 2억 3천여만 원을 갚아주고, 서울의 고가 아파트 재건축 분양권과 해당 유명 식당 2호점의 운영권 등도 주겠다"고 꾀었다. 범행 가담을 머뭇거리는 김 씨 부부에게 박 씨는 눈 앞에 있는 이익이 바로 실현될 것처럼 현혹했다. 김 씨 부부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씨와 이 씨는 식당 대표 A 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A 씨가 속칭 '꽃뱀'이라는, 박 씨의 일방적 주장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 "택배기사 위장, 몽둥이로 폭행" 등 구체적 지시…수 차례 범행 시도
주범 박 씨는 김 씨 부부에게 범행 착수금 명목의 돈 수천만 원을 건넨 것 외에도, 이들 부부가 제주를 여러 차례 오가며 드는 호텔 숙박비와 교통비 등 범행에 필요한 자금을 댔다.
범행 실행 과정에서도 박 씨는 김 씨 부부에게 범행 계획을 지시했다. "자택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택배기사로 위장하라", "A 씨를 몽둥이로 때려라"와 같이 실행 방법도 구체적이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범행을 지시하며 "A 씨가 오랜 기간 병원에 있어야 한다. A 씨가 못 일어나면 못 일어날수록 좋다"고도 말했다. 이 같은 지시를 들은 김 씨는 "식물인간으로 만들라는 것이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이들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범행을 계획했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둔기·전기충격기 등을 이용한 급습, 주거지 침입과 가스 배관 절단 등 다양한 방법으로 A 씨를 살해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앞선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022년 12월 28일 KBS 뉴스 5
그러다 A 씨의 자택에 몰래 들어가 범행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 씨는 택배기사를 가장해 공동현관문을 통과했고, A 씨 주거지 앞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살해 범행 당일, 박 씨는 피해자 A 씨의 위치를 김 씨 부부에게 알렸다. 김 씨의 아내 이 씨는 차량을 이용해 A 씨를 미행하며, 남편 김 씨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김 씨는 미리 파악한 피해자 주거지에 몰래 침입했다. 이어 3시간 가까이 집 안에서 기다리다가, 귀가하는 피해자 A 씨를 집에 있던 둔기로 20차례 넘게 때려 무참히 살해했다. A 씨의 집에 있던 금품도 훔쳐 나왔다.
김 씨 부부는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승선권을 구매해 신분을 숨겼고, 이를 사전에 연습하기도 했다. 범행 당일엔 옷을 갈아입어 택시를 갈아타는 방식으로 제주도를 빠져나갔다. 강도살인 범행 전반을 지휘한 박 씨도 제주를 떠났다.
2022년 12월 28일 KBS 뉴스 5
박 씨는 피해자 A 씨가 살해된 직후 A 씨의 딸에게 전화하는 태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마치 식당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며, A 씨 딸과 식당 지분을 논의했다.
또 박 씨와 김 씨는 살인 사건 이후에도 만나 "A 씨가 죽을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것으로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 "치밀한 살해 범죄 계획"…주범 무기징역·공범 징역 35년
제주지방법원 형사2부(재판장 진재경)는 어제(13일)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주범 박 모 씨에게 무기징역을, 직접 A 씨를 살해한 공범 김 모 씨에게 징역 35년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범행 후 도주를 도운 김 씨의 아내 이 모 씨에게는 강도살인 대신 강도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피해자 A 씨와 사이가 틀어진 박 씨가 채무를 상환해야 한다는 압박과 피해자 소유의 유명 음식점 경영권을 가로채겠다는 욕심에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봤다.
박 씨는 검·경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살해를 지시하거나 공모한 적이 없다"고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피해자에 대한 강도와 상해까지는 예상했지만, 살해를 지시하거나 공모하지 않았다", "김 씨 부부가 범행을 주도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검·경이 주장한 대로 박 씨가 이번 범행을 주도했고, 박 씨의 지시를 받은 이 씨가 피해자를 직접 살해한 것으로 봤다.
박 씨는 이 사건 전에도 여성들에게 접근해 돈을 편취하는 등의 범행으로 징역형 등 수 차례 형사 처벌 전력이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박 씨가 김 씨 부부에게 범행 자금을 지원한 점, 범행 후 금전적 이익을 약속한 점, 피해자 주거지 비밀번호를 알아낸 점 등으로 미뤄 명시적이지는 않아도 묵시적으로 박 씨가 김 씨에게 피해자를 살해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 박 씨는 피해자가 운영하는 식당과 재산에 욕심을 가지면서, 이를 탈취해야겠다는 생각에 피해자와 아무런 관련 없는 김 씨와 이 씨를 끌어들여 치밀한 계획과 준비를 거쳐 피해자를 살해했다"면서 "피고인 박 씨가 아니었으면 피해자와 아는 사이도 아닌 김 씨와 이 씨가 범행할 이유도 없다. 박 씨는 직접 가해 행위를 하지 않았을 뿐, 범행을 주도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실행에 옮긴 피고인 김 씨의 아내 이 씨의 경우, 범행에 가담은 했지만 사건 당일 남편 김 씨가 흉기는 소지하지 않고 갈아입을 옷만 가져간 점, 박 씨가 이 씨에게는 직접 이 사건 범행 내용을 공유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남편이 살인할 줄은 몰랐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김 씨와 이 씨도 각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번 범행에 가담했다. 김 씨는 잔인하게 생면부지 피해자를 사망케 했지만, 범행 전반을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사망해 김 씨의 죄책도 크다. 이 씨의 경우, 남편 김 씨를 따라 다소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 다른 공범들이 비해 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주범 박 씨와 공범 김 씨에게 사형을, 이 씨에게는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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