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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뉴스] “수술로는 한계” 병원 박차고 나와… 암 치료제 개발, 세계 1위 부자 의사로
  • 쿠궁쿠궁 브론즈 관리자
  • 2023.09.05 09:21 조회 212

남아공서 태어난 중국계 이민자
외과교수 출신 패트릭 순시옹

유방암·췌장암 치료제 아브락산을 개발한 패트릭 순시옹 박사가 암 치료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최고의 이식 외과의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바이오 기업을 세운 그는 빅데이터와 수퍼컴퓨터를 활용한 평등한 의료 시스템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게티이미지
2014년 1월 미국 온라인 매체 허프포스트에 파격적인 제안을 담은 기고문이 실렸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부적절한 치료를 받은 위험이 크고, 생존율도 낮다. 비극적인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단적 인종차별 정책)가 의료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전역의 병원과 연구 기관이 보유한 개별 환자들의 유전자 서열 분석 데이터를 통합해 암 치료를 위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날 당연시되는 빅데이터 기반의 진단과 개인화된 암 치료를 9년 전에 주장한 사람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외과 교수 출신 패트릭 순시옹(Patrick Soon-Shiong·1952~)이었다. 시옹은 자신의 주장을 ‘의학의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최고의 과학자 수천 명이 함께 원자폭탄을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것처럼 의학에서도 모두 힘을 합쳐 암과 난치병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당시에는 꿈같은 얘기였지만 의학·바이오 학계의 누구도 ‘헛소리’라고 치부하지 않았다. 남아공에서 중국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노력으로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고, 난치병 치료제를 만들어낸 시옹의 삶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현국
◇세계 최초의 췌도 이식

중국 소수민족 하카족인 시옹의 부모는 광둥성에 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을 피해 남아공으로 이주했다. 시옹의 아버지는 한의사였지만 남아공에서는 조그마한 가게를 열었다. 시옹은 “가끔 약을 달이는 아버지를 보면서 사람의 몸에는 스스로 지켜낼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16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비트바테르스란트대에 진학해 23세에 의사가 될 때까지만 해도 시옹은 또래보다 조금 뛰어난 수준이었다. 당시 남아공에서 중국계 의사는 흑인과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백인 동료 연봉의 50%만 지급됐고, 흑인 환자들조차 시옹의 진료를 거부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로 떠난 시옹은 1983년 UCLA 최연소 외과 교수가 됐고, 수술실에서 그의 숨은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믿을 수 없는 외과 의사’라고 불렀다. 모두가 고개를 저을 때 앞장서 집도하는 시옹을 두고 동료 한 사람은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유전자가 혈관을 흐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시옹은 UCLA 최초로 췌장 이식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형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도(랑게르한스섬)를 세계 최초로 이식했고, 돼지 췌도의 사람 이식도 시도했다. ‘당뇨 치료의 신기원’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환자는 몇 년 뒤 건강이 다시 악화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옹은 환자 개개인을 고치는 것보다 큰 도전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수술이 아닌 치료제 개발로 질병 자체를 정복하겠다는 것이었다.

◇블록버스터 신약 아브락산 개발

1991년 병원을 나온 시옹은 당뇨병과 췌장암을 연구하는 벤처기업 비보알엑스를 차렸다. 포브스는 “이식과 암 분야에서 쌓은 시옹의 경력은 백신과 치료제의 핵심인 면역체계를 파악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옹 자신도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사람의 몸을 작은 세포가 아니라 하나의 생물학적 시스템으로 보게 됐다”고 했다.

시옹은 1960년대 미 국립암연구소에서 개발한 화학 치료제 탁솔(taxol)을 단백질로 감싸 종양에 더 쉽게 전달되게 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해 시옹은 1998년 복제 약 주사제를 판매하는 상장 기업 후지사와를 인수했고,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거쳐 2005년 신약을 출시했다. 블록버스터 중증 폐암·유방암·췌장암 치료제 아브락산이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아브락산은 표준 요법에 실패한 암 환자들의 대안이 되면서 ‘암 치료의 새로운 빛’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부 학자는 아브락산이 탁솔을 변형했다며 진정한 신약이 아니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췌장암은 아브락산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는 것이 의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2021년 기준 아브락산의 연 매출은 12억달러(약 1조5800억원)에 이른다.

◇바이오와 테크 넘나드는 연쇄 창업가

시옹은 바이오 업계를 대표하는 연쇄 창업가이다. 아브락시스 바이오사이언스와 APP파마슈티컬을 세웠고, 2002년 설립한 난트퀘스트는 시옹의 또 다른 회사인 이뮤니티바이오와 함께 면역체계가 감염된 세포를 파괴할 때 사용하는 자연살해세포(NK세포) 개발에 주력했다. 난트퀘스트의 신약 후보 물질 NK-92는 2018년 네바다주 상원 의원 해리 리드의 중증 췌장암을 완치시키면서 화제를 모았다. 다만 의학계에서는 리드의 사례가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누구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NK세포 치료제는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고 본다. 시옹은 2007년 난트헬스와 난트웍스라는 회사를 세우면서 바이오테크 사업도 시작했다. “초저전력 반도체 기술, 수퍼컴퓨팅, 보안 네트워크, 인공지능 등을 융합해 의학의 새로운 장을 열겠다”는 포부였다. 시옹은 “난트웍스 로고에 있는 깃펜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관점을 의미하는데, 현대에 다빈치가 있다면 그는 깃펜 대신 수퍼컴퓨터를 활용할 것 “이라며 “수퍼컴퓨팅 시스템을 이용해 47초 만에 종양 샘플의 유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18초 만에 전 세계 어디로나 결과와 처방을 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더 많은 데이터로 사람의 몸을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다발성 경화증, 류머티즘 관절염 등 수많은 질병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시옹의 생각이다. 포브스는 시옹의 구상에 대해 “현실화된다면 공상과학 드라마 스타트랙에 나오는 진단 기기 ‘트라이코더’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시옹이 지금까지 직접 창업했거나 관여한 회사는 20곳에 이른다.

◇사업에선 머스크와 닮은 꼴

시옹은 동물적인 사업 감각과 냉철한 판단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세계 최고 갑부 의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고 2017년에는 3억2460만달러의 연봉으로 구글의 순다 피차이, 애플의 팀 쿡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액 연봉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자신이 구상하는 신약이나 제품이 나오면 최고의 가치를 평가해 주는 업체에 넘기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 나서는 일을 반복했다. 첫 회사였던 비보알엑스가 해산물에서 추출한 젤을 이용한 당뇨병 후보 물질을 개발하자 독일 제약 회사에 37억달러에 매각했고, 아브락산의 가치가 치솟자 29억달러에 미국 셀진에 팔았다. 한때 그의 자산은 120억달러를 넘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를 넘어 로스앤젤레스 최고의 부자에 오르기도 했다. 시옹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 괴짜인 머스크와 자주 비교된다. 거창한 비전을 먼저 발표하고 투자금을 끌어모은 뒤 출시 시기는 계속 미뤄지는 등 두 사람의 사업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경쟁자를 폄하하고 때론 짓밟는 부분까지도 닮았다. 시옹은 2015년 바이오벤처 소렌토 테라퓨틱스의 신약 후보 물질을 9000만달러에 사들였는데, 계약과 달리 FDA 승인을 추진하지 않고 특허가 만료될 때까지 방치했다. 잠재적인 경쟁자를 사들여 시장에서 사라지게 한 일종의 약탈 행위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옹을 과학자가 아닌 사업꾼이자 쇼맨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옹은 암 정복을 위한 기부와 공익 프로젝트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질병 정복에 대한 자신의 꿈은 변치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평생 암과 싸운 것처럼 가짜 뉴스와 싸우겠다”

억만장자가 된 뒤 시옹이 관심을 가진 것은 자신의 경력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언론사였다. 2018년 시옹은 미 6대 일간지 중 하나인 LA타임스를 비롯해 샌디에이고유니언트리뷴, 스페인어 신문 호이 등을 소유한 캘리포니아뉴스그룹을 인수하고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시옹은 왜 심각한 적자로 위기를 맞았던 캘리포니아뉴스그룹을 인수했을까. 그는 LA타임스 전면 광고로 게재한 취임사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포트엘리자베스에서 태어난 시옹은 14살 때부터 이브닝포스트 신문을 배달하며 대학 학자금을 마련했다. 그는 “남아공에서 비백인으로 아파르트헤이트의 폐해를 느끼며 신문의 1면과 심층 뉴스를 열심히 읽었다”면서 “민주주의와 자유사회를 육성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저널리즘이 하는 역할에 감사했다”고 했다. 또 “컨베이어 벨트에서 갓 인쇄된 신문 냄새와 인쇄기의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면서 “LA타임스의 진실성과 정직성, 공정성을 보존하겠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조리한 환경과 제도를 경험한 시옹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 수호를 택했다는 것이다. 시옹은 가짜 뉴스를 암, 소셜미디어는 전이 수단이라고 했다. 평생을 암과 싸워온 시옹이 사회를 좀먹는 암과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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