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로 몰리는 젊은 의사들
일러스트=이철원
‘경력 무관’, ‘주3일 (근무해도) 900만~1000만원’
서울의 한 미용 피부과 의원이 최근 의사 전용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구인 공고다. ‘의대를 갓 졸업한 일반 의사도 지원 가능’하며, ‘주 5일을 하면 1400만원까지 월급(세후)으로 준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요즘 의료계에선 이런 미용 피부과 의사를 ‘무천도사’(無千都師)’라고 부른다.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로 전공 과목이나 경력이 없어도[無], 세후 월 1000만원[千] 이상을 받고, 도시[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미용 피부과 의사[師]를 일컫는 말이다. 4일 본지가 의사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디게이트에 올라온 140여 피부과 의원의 구인 공고를 분석해 보니 대부분이 평일과 토요일 등 주 6일 근무를 하면 1100만~1600만원(세후)의 월급을 주겠다고 했다. 경기도 부천의 한 피부과는 며칠만 일하는 ‘알바 의사’에게도 일당 70만원(세후)을 주겠다는 공고를 냈다. 다른 병원은 ‘내과·정형외과 전문의’ 등 지원 요건에 전공과 경력을 분명히 기재했다. 반면 미용 피부과 의원들의 공고 대부분에는 ‘경력·전공 무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과 수원의 한 미용 전문 피부과는 진료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의에게도 주 6일 근무에 13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이 커뮤니티엔 경기도 동탄 신도시의 한 병원이 산부인과 전문의를 구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주 6일 근무에 월급으로 1500만~1550만원(세후)을 주겠다고 했다. 의대를 갓 졸업한 미용 피부과 일반의 월급이 최소 4~5년을 더 공부한 산부인과 전문의 월급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서울의 한 피부과 원장은 “일반의 자격을 따고 곧바로 미용 피부과에 몇 년 취업한 뒤 개업하는 의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피부과 의원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미백이나 주름 개선 등 피부 미용 수요가 대도시에 많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현재 피부과 의원 1428개 중 59%가 서울과 경기도에 몰려 있다. 내과(45%), 외과(43%) 등 다른 과에 비해 수도권 집중도가 높다. 생활 여건이 좋은 수도권은 의사들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의사들은 대도시에서 별다른 경력이 없어도 고액을 벌 수 있는 미용 피부과로 점점 몰리는 추세다. 올해 전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를 보면, 피부과는 66명 모집에 99명이 지원했다. 지원율이 150%로 안과(170%), 성형외과(157%)와 함께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교수는 “‘무천도사’라는 말은 일부 미용 전용 피부과 이야기”라며 “피부암이나 아토피 등을 치료하는 피부과 의사들과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 필수 의료 분야는 전공의 모집에서 미달이 잇따르는 등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일이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국내 첫 어린이 전문병원인 서울 소화병원은 의사 부족으로 지난 6월 일요일 등 휴일 진료를 중단했다. 인천 지역 상급 종합병원인 가천대길병원은 전공의가 부족해 작년 12월부터 두 달간 소아청소년과의 입원 진료 자체를 중단했었다.
지방 상황은 더 심각하다.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은 3억6000만원의 연봉을 내걸고 5차례 공고 끝에 1년 만인 지난 5월 내과 전문의를 구해 진료를 시작했다. 강원도 속초의료원은 올 초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3명이 퇴사해 응급실을 주 4회 단축 운영해 왔다. 연봉 4억원을 줘서 4월에야 겨우 응급실 의사 3명을 충원했다. 경북 울릉군보건의료원은 2년 전 연봉 3억원을 내걸고 9차례 공고를 낸 뒤에야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의사를 겨우 구했다. 둘 다 70세가 넘은 퇴직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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