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경차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전체 자동차 시장의 35%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다. 박스카, 미니밴,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스포츠카 등 여러 형태가 판매되고 있다.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경차 종류는 55종에 달한다.
31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누적 국내 경차 판매량은 9만445대로, 전년 같은 기간(9만8408)에 비해 8.1% 줄었다. 기아가 부분변경 신차를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크지 않다.
일본의 한 시내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다이하쓰 경차./일본=박진우 기자
업계는 국내 소비자가 경차를 기피하는 이유로 소비 형태의 변화를 꼽는다. 소비자가 큰 차를 좋아하면서 작은 차를 잘 사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도 대당 이익이 적은 경차를 개발할 유인이 적다. 판매를 완전히 중단하기 어려우니 과거에 개발한 차를 껍데기만 바꿔 내고 있다.
소비자 선택지가 제한적인 점도 문제다. 한국은 경차 제조사가 현대차와 기아 두 곳에 불과하다. 한국GM(GM 한국사업장)이 과거 스파크를 판매했으나 몇 년 전 단종했다. 판매 차종은 현대차 경형 SUV 캐스퍼, 기아 모닝과 레이 등 3종이 전부다.
스즈키가 재팬모빌리티쇼에서 선보인 전기 경차. /일본=박진우 기자
일본은 아직도 경차가 주력 차종으로 여겨진다. 일본 전국경자동차협회연합회에 따르면 일본 경차는 올해 9월까지 누적 16만5285대가 판매돼 전년 같은 기간(15만3121대)와 비교해 7.94% 늘었다.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5% 수준이다.
일본은 1950~60년대 자동차 보급 촉진을 위해 경차급을 신설했다. 수십년간 여러 차례 법 개정을 거쳐 규격을 바꿨고, 1990년대부터는 길이 3400㎜, 너비 1480㎜, 높이 2000㎜라는 현재의 규격이 정립됐다. 여기에 배기량은 660㏄로 제한하고 있다.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배기량 1000㏄인 한국 경차보다 규격이 까다롭다.
일본은 올해 기준 총 55종의 경차를 판매 중이다. 일본에서 자동차 회사 ‘빅3′로 불리는 도요타, 혼다, 닛산 외에 다이하쓰, 스즈키, 미쓰비시, 스바루, 마쓰다 등 거의 모든 회사가 경차를 만들어 판매한다. 형태도 SUV, 미니밴, 트럭, 스포츠카 등으로 다양하다.
재팬모빌리티쇼에 다이하쓰가 소개한 비전 코펜. 경형 스포츠카 코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일본=박진우 기자
일본에서 경차가 인기 있는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세는 경차와 일반 승용차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경차는 매년 1만800엔(약 9만8000원)을 내는 반면, 경차 이외의 차는 배기량에 따라 2만5000~11만엔(2019년 10월 이후 신차 등록차)을 낸다.
일본에서 자동차를 보유하면 신차 구입 후 3년, 그 후로 2년마다 자동차 검사를 받는다. 이때 중량세(차 무게에 따른 세금)가 부과되는데, 경차는 정액으로 3300엔이고 경차가 아니면 0.5톤(t)당 4100엔을 부과한다. 지역별로 경차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최대 20% 할인해 주기도 한다.
일본에서 차를 사려면 집 또는 집 반경 2㎞ 이내에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 이른바 차고지 증명제다. 일본 아파트 또는 빌라(맨션)는 공간상 제약으로 기계식 주차장인 경우가 많은데, 규격이나 중량(무게)이 정해져 있어 작고 가벼운 경차가 유리하다.
일본의 도로 위에 한 경차가 정차해 있다./일본=박진우 기자
일본에서는 경차 시장이 확고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경차에서 경차 외 시장으로 유입되는 소비자도 적다. 이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이 신형 경차를 만들지 않으면 시장 점유율을 경쟁사에 빼앗긴다.
오카자키 고로 일본 자동차저널리스트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차가 2대 있다면 1대는 경차일 정도로 일본 내 경차 시장의 지위는 확실하다”며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간 신차 경쟁도 치열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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