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의 성지’라 불리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 여름 성수기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었지만 지금도 초겨울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해변 바로 앞에는 20~30층 높이의 고층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고, 공사가 진행 중인 곳들도 상당수였다. 대부분은 2020년 이후 지어진 생활형 숙박시설이다.
하지만 투자 수요가 급격히 몰리며 치솟은 땅값,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과잉 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양지역 주민들이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20일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죽도해변 인근에는 체류형 관광객들을 타깃으로 한 생활형 숙박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심윤지 기자
26일 국토교통부 ‘2022년 연간 지가변동률’에 따르면 지난해 양양군 땅값은 전년 대비 3.935% 올라 속초시(3.674%)를 제치고 ‘강원도 땅값 상승률 1위’에 올랐다. 이는 서울 자치구 중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서울 서초구(3.982%)에 육박하는 수치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땅값 상승률이 강원도 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쳤던 양양은 2016년 이후로 속초시와 도내 1위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양양 땅값 상승은 서핑 문화가 태동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돼 최근 몇년 사이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2017년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2020년 낙산도립공원 해제에 따른 고도제한 규제완화 등이 ‘개발 호재’로 작용하며 투자 수요가 몰린 탓이다. 양양이 2030세대 사이의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탄 뒤에는 클럽이나 술집같은 유흥시설도 줄줄이 들어섰다.
노승법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양양군 지회장(물치공인중개사 대표)은 “서핑 수요가 많은 인구해변쪽은 3.3㎡ 당 땅값이 5000만원에 육박한다. 최근엔 3.3㎡ 당 7000만원이 넘는 매물도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쁜 지금 상황에서는 ‘거품’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가격”이라고 했다.
양양 현남면 일대에 마련된 생활형 숙박시설 분양 홍보관. 심윤지 기자
투자수요는 아파트 규제를 피하면서도 소자본 투자가 가능한 생활형 숙박시설로 몰려들었다. 경향신문이 양양 인구·죽도해변 인근을 돌아본 결과 최소 7곳 이상의 생활형 숙박시설이 분양 중이었는데, 분양가의 1000만~1200만원 ‘마이너스피’ 매물을 다수 찾아볼 수 있었다. 부동산 상승기였던 2~3년 집중적으로 공급됐다가 금리 인상 이후 시장의 외면을 받은 매물들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인근 지가와 임대료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냈다. 해변가에 자리잡은 서핑샵들은 연세 또는 월세로 임대 계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양이 서핑으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대부분의 관광수요는 여름에 집중되어있는 반면, 임대료와 인건비는 연간으로 발생되다보니 사업성이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치솟는 비용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는 곳들도 나오고 있다.
죽도해변에서 서핑샵을 운영하는 A씨는 “개업한 3년 전보다는 2배, 처음 개업을 고민했던 10년 전보다는 20배가 뛰었다”며 “하루하루 오르는 땅값을 보면 미쳤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핑샵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일(서핑)을 하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인데 그것도 옛날 이야기가 된 것 같다”며 “인건비와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벅차 고민”이라고 했다.
지난 9월부터 양양군이 서울소셜스탠다드를 통해 위탁운영하는 워케이션센터 ‘웨이브웍스’ 내부. 심윤지 기자
양양이 난개발이 아닌 지역 발전의 모범 사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결국 기존 지역상권과 주민들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꾸준한 관광 수요가 유입되는 것이 관건이다. 서핑 목적 외의 관광객,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이 필수적이다. 양양군이 지난 9월 워케이션(휴가지 원격근무) 센터 ‘웨이브 웍스’를 개소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웨이브웍스 민간운영 위탁사인 김하나 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는 “양양군은 최근 급격히 유흥화·관광화됐다는 위기의식이 있다”며 “워케이션 센터는 양양을 사계절 찾을 수 있는 도시로 바꿔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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