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후 9시 국내 최대 홀덤펍 밀집지역 중 하나인 경기 수원시 인계동. 8층 상가 건물의 4층과 7~8층에서 홀덤펍 2곳이 영업 중이었다. 입장료 2만원을 내고 1시간가량 텍사스홀덤 게임을 해봤다. 평범한 술집·보드게임방 같아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님이 “다음번에는 단골과 함께 오라”고 귀띔했다. “업주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단골과 함께 오면 최소 현금 20만원을 칩으로 환전한 뒤 칩을 걸고 홀덤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게임을 마친 후엔 남은 칩을 흡연장이나 카운터 옆 커튼 뒤의 공간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불법 사설 카지노와 다름 없는 방식이다.
회사원 박모(27)씨는 8년 전 강원랜드 등에서 도박에 빠졌다가 4년 전부터는 홀덤펍을 주로 찾는다. 그는 “수원에 몰래 도박을 하게 하는 홀덤펍이 많다. 24시간 문 여는 곳도 있다”며 “집 가까운 데서 할 수 있는데 강원랜드까지 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껏 홀덤펍 등에서 탕진한 돈은 약 5억원이다.
국내 도박 시장의 ‘판’이 바뀌고 있다. 정부 관리를 받는 합법도박에서 관리망 바깥의 불법도박으로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 중이다. 중독자는 급증하는데 합법 도박장 매출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불법도박 영역의 확장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지난해 기준 만 20세 이상 국민 가운데 237만여명이 도박중독 환자(유병률 5.5%)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박중독 유병률이 스웨덴(2021년·1.3%)의 4배 수준이다. 실제 치료를 받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집계에 잡히는 도박중독 환자 수도 2017년 1119명에서 지난해 2312명으로 5년 만에 2배 이상이 됐다. 올해 들어선 8월까지만 2403명으로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었다.
마약중독과 비교하면 심각성이 더 잘 드러난다. 지난해 마약사범(소지·투약·유통 등)은 역대 최다인 1만 8395명이었는데, 여기에 암수율 28.57배(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 추산)를 곱하면, 미검거 사범까지 더해 총 52만여 명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이 전부 마약중독자라고 가정해도 도박중독자(237만여 명)의 4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당국은 중독자가 빠르게 느는 원인이 불법도박 시장의 급성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사감위는 불법도박 매출(이용자 기준)이 2016년 70조 8934억원에서 지난해 102조 7236억원으로 늘어난 걸로 추산한다.
반면 합법도박 매출은 감소세다. 강원랜드 연간 매출액은 2016년 1조 6277억원에서 지난해 1조 2235억원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같은 기간 경마는 7조7459억원에서 6조3969억원으로, 경륜은 2조2818억원에서 1조6865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불법도박 시장이 확대되면서 강원랜드의 성장 잠재력은 지속해서 하향 압력을 받고 있다”며 “언제 어디서든 불법 도박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 굳이 강원랜드를 찾을 유인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불법도박 붐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일고 있다. 비중이 큰 건 온라인이다. 지난해 사감위의 불법도박 적발 건수 중 온라인 비중이 99%에 달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치유원)의 지난해 상담 사례 중 불법 온라인 도박 비중이 71%였다.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카피 앤드 페이스트(copy and paste)’ 하고 운영방식만 살짝 바꾸면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만들 수 있어 우후죽순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청소년이 도박장 운영에 나서기도 한다.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은 “같은 학년 친구나 후배를 회원으로 모집하는 ‘총판’을 맡은 적 있다”며 “총판으로 활동하다 사이트 운영자로 독립한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불법도박 시장도 결코 작지 않다. 과거처럼 창고 등에 차려지는 ‘하우스’가 대신 유동인구가 많은 유흥가 내 홀덤펍·보드게임카페로 위장한 도박장이 성업하며 시장 규모도 커졌다. 2019년 7월부터 수원 인계동에서 건전 홀덤펍을 운영 중이라는 장모(35)씨는 “우리 손님들이 시간이 갈수록 ‘캐시펍(불법 도박을 하게 하는 홀덤펍)’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불법도박 시장을 키운 요인은 여러 가지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관광대 교수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합법도박장이 위축되며 ‘풍선 효과’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규호 중독예방시민연대 대표는 “합법도박이 유사한 유형의 불법도박을 유발한다는 ‘기관차 이론’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안식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기간 경기침체로 한탕주의가 만연한 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불법 도박시장 급성장을 이끄는 건 조직폭력배들이다. 지난 3월 2일 울산경찰청은 경기·경남·경북·전남 등 조직폭력조직 13개파(13명)가 가담한 10조원 규모(사이트 예치금 기준)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일당은 2019년 9월부터 미국과 캄보디아 등에 사무실을 만든 뒤 불법 도박 사이트 46개를 개설하고, 약 3만명의 회원을 모집해 총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거둔 혐의를 받는다.
현재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도 홀덤펍 위장 불법 도박 혐의로 경기 남동부 주요 폭력조직 두 곳을 수사 중이다. 경기 파주시에서 불법 홀덤펍을 운영 중인 P파 조직원 최모(42)씨는 “파주 홀덤펍 밀집지역은 한국의 마카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난리”라고 말했다. 치유원 이사인 김진욱 변호사는 “적은 리스크로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조폭들의 주요한 이권 사업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사·단속은 불법 도박의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2020년 5436건에 달했던 경찰의 온라인 불법 도박 범죄 검거 건수는 지난해 2838건까지 떨어졌다. 한 일선 수사관은 “도박장 운영조직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수시로 도메인을 옮겨 내부고발자가 없으면 총책 적발이 쉽지 않다”며 “적발해도 곧 도메인만 바꿔 영업을 재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불법 도박 시장을 주도하는 홀덤펍을 두고도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하고 합법 영업을 하는 것처럼 포장해 점점 단속이 어려워지고 있다”(임창영 경기남부청 강력범죄수사대 팀장)는 탄식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9월까지 조사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홀덤펍 1200여 곳 중 99%는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돼 있다.
사감위 위원인 김선욱 변호사는 “도박사범에 대한 형사처벌이 대부분 벌금형이나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솜방망이인 점도 문제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도박행위를 한 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습 도박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영리 목적으로 도박장을 개설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김 변호사는 “중독 치료 등 노력이 확인된 도박사범은 선처하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무관용 대응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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