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앤드컴퍼니는 올해 세계 명품 시장 규모를 3620억 유로(약 514조원)로 추산하고, 지난해(20.3%)에 비해 성장률(3.7%)이 급감할 것이라고 최근 전망했다. 사진은 10일 서울 한 백화점 외벽의 명품 브랜드 광고. 뉴시스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 열풍을 타고 급성장한 글로벌 명품 패션 시장이 다시 움츠러들었다. 팔리지 않은 제품의 재고가 쌓이면서 이례적인 할인판매 움직임도 있다. 국내서도 경기 둔화 여파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지난해 수차례 연이어 가격을 올렸던 명품업계는 눈치를 살피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명품 브랜드가 넘쳐나는 재고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보도했다. 10일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명품 시장은 올해 3620억 유로(약 514조원) 규모로 전망된다. 이는 전년 대비 3.7%가량 성장한 수준이지만 2021년 31.8%, 2022년 20.3% 팽창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체다.
이는 글로벌 경기가 악화하면서 소비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럽 온라인 명품 쇼핑몰 마이테레사는 올해 시장 상황이 금융 위기가 덮친 2008년 이후 최악이라면서 지난 3분기 말 기준 재고가 1년 전보다 44% 급증했다고 밝혔다.
통상 백화점과 이커머스 등 유통업계는 할인 행사를 통해 재고 소진에 나서지만 명품 브랜드들은 엄격한 규정을 통해 가격 책정과 재고 관리에 나선다. 브랜드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프라다는 올해 도매상에 대한 의존도를 2018년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 제품 대부분을 본사가 가격을 완전히 통제하는 자체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버버리는 시중에 풀린 제품 물량을 조절하기 위해 재고를 다시 사들였다. 이 브랜드는 2018년엔 2860만 파운드(약 473억원) 상당의 제품을 소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지난 7월 환경과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패션 제품 폐기와 소각을 금지하기로 결의하면서 명품업계는 재고 처리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부 브랜드는 그동안 금기처럼 여겼던 비공식 재판매상들을 접촉해 판로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WSJ에 따르면 최근 수개월간 비공식 재판매상들은 브랜드들로부터 제품을 팔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판매상들은 명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유럽 등에서 재고를 사서 가격이 최대 30% 이상 높은 한국이나 홍콩에 파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명품 브랜드들은 그렇지 않아도 다른 지역보다 가격이 비싼 국내 시장서 수차례 가격을 올리면서 특수를 누렸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의 지난해 국내 매출 합계는 전년 대비 22% 증가해 4조원에 육박했다.
샤넬은 올해 2월과 5월 주요 제품 가격을 두 차례 인상했다. 지난해 네 차례(1·3·8·11월) 가격 인상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횟수는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해 2·10월 가격을 올린 루이비통은 올해 6월 한 차례만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업체들이 저조한 판매율과 가격 줄인상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선물 수요가 많은 연말·연시에 환율 등을 이유로 다시 인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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