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전 강진으로 지반 액상화 현상이 나타난 일본 이시카와현 우치나다에서 4일 전봇대가 쓰러지고 땅이 울퉁불퉁하게 솟아 올라 있다. 우치나다=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우치나다=이상훈 특파원 “마을이 이렇게 돼 버려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4일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해안 마을 우치나다(内灘)정. 1일 발생한 노토(能登)반도 규모 7.6 강진의 직격탄을 맞아 도로를 따라 서 있던 전봇대가 엿가락처럼 쓰러져 있었다. 도로, 집 마당 곳곳이 1m 이상 솟구쳐 오른 모습도 목격됐다. 지진 지역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액상화’다. 연약한 지반과 지하수 등이 섞여 땅이 잼처럼 물컹해지는 현상이다.
지진 피해가 가장 큰 노토반도는 인명 구조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지진 발생 후 72시간이 지나도록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가 179명에 이른다. 더욱이 산골 마을은 구호품이 제때 닿지 않아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는 극한 상황에 이르렀다.
우치나다정은 이시카와현 최대 도시 가나자와에서 차로 30분 떨어진 곳이다. 바닷가에 모래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호수인 석호(潟湖) 주변이라 지반 대부분이 모래다.
강, 호수, 모래, 갯벌 매립지가 지진으로 뒤섞이면서 이곳에선 지반이 늪처럼 변하는 액상화 현상이 나타났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현 지방도 8호선은 아스팔트가 갈라졌고 도로 및 주변 지역은 땅이 울퉁불퉁해졌다. 쓰러진 도로 안내판을 보고서야 이곳이 차도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주차돼 있던 차량은 구석에 박히거나 뒤틀린 아스팔트 사이에 끼였다.
길에서 만난 50대 주민은 “여기서 살긴 어려울 것 같다. 평화로운 마을이 한순간에 이렇게 돼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마을에 몰려 있는 소규모 섬유 공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또 다른 40대 주민은 “살고 있던 2층 목조 주택이 지진으로 크게 뒤틀려 대피소 신세를 지고 있다. 집에 있던 가전제품, 먹거리는 다 못 쓰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노토반도에서는 이날도 여진이 계속돼 도로 곳곳이 갈라졌고 산사태가 이어졌다. 흙더미가 쏟아져 내리거나 바위가 떨어진 도로는 통행이 제한됐다.
식량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국도 변의 대피소 등 일부 주민들은 구호 식량을 공급받아 외지인과도 일부 나눠 먹고 있지만, 산사태 및 도로 갈라짐 등으로 고립된 산골 마을에서는 먹을거리가 떨어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시카와현은 이날 와지마시 및 스즈시로 향하는 주요 국도 및 지방도에 구급차, 구호품 트럭, 자위대 등 필수차량 우선 통행 조치에 들어갔다.
스즈 산골 마을에 고립된 한 남성은 “아이가 꼬박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여기는 구호품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자위대가 지진 발생 후 사흘 만에 이날 처음으로 헬리콥터를 동원해 국도 휴게소에 물자를 전달했지만 고립 지역까지 구호품이 전달되진 못하고 있다.
고립지에서 걸어서 스즈 시내까지 나왔다는 한 남성은 NHK에 “비축한 컵라면, 물로 사흘간 버텼지만 이게 떨어지면 더 이상 먹을 게 없다”고 말했다.
자위대 상륙함이 3일 지진 피해가 집중된 이시카와현 와지마에서 공기부양정까지 동원해 인명 구조용 중장비를 내리고 있다. 와지마=AP 뉴시스 지진 재난구조의 골든타임인 72시간이 지난 가운데 생존자 수색이 계속되고 있다. 노토반도는 일본에서도 외진 시골이라 노인 한두 명이 사는 가구가 많다. 이곳에 어머니가 거주한다는 한 남성은 이날 NHK와의 통화에서 “3일 오전 유선전화가 연결돼 무사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이후 연락이 안 된다. 지방자치 사무소에 물어봤지만 어머니 거주 지역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한다”고 애를 태웠다.
이날 오후 8시 기준 지진 사망자는 84명으로 확인됐다. 이시카와현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주민 17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NHK 라디오가 실종자 이름, 나이, 성별, 거주지를 반복해 방송하고 있다.
와지마 등 일부 지역에서는 TV 지상파 방송도 중단됐다. 정전이 계속되고 TV 중계소에 연료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비상용 배터리 충전도 불가능해서다. 일부 지역은 FM 라디오마저 끊겨 AM 라디오만 간신히 나오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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