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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버려지는 옷 330억 벌…패션쇼 반대시위 벌어진 까닭
  • 대구정플라워 실버 파트너스회원
  • 2021.07.12 10:06 조회 1,570


▲ KBS 2TV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편의 한 장면
ⓒ KBS


굳이 옷장 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안다. 안 입는 옷이 잔뜩 걸려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절마다 유행에 따라 옷을 산다. 매년 생산되는 옷이 무려 1000억 개라고 한다. 가늠하기 힘든 숫자이다. 버려지는 옷은 얼마나 될까. 놀랄 준비하시라. 무려 330억 개이다. 도대체 이 옷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한철 입고 버릴 옷에 치러야 할 편리함의 대가는 누가 치르고 있을까.

지난 주 방영됐던 KBS 2TV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찾아간 곳은 거친 파도가 부서지는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였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그곳 어민들에게 최근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바로 파도 사이로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미역처럼 길게 뭉친 버려진 옷뭉치였다.

파도를 따라 흘러 들어온 옷뭉치를 건져내는 건 이제 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됐다. 마을 주민인 리차드 콜리는 해외에서 온 더러운 옷들 때문에 고기잡이에 방해가 된다면서 이 많은 양의 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산 적도 입은 적도 없는 옷들이 엉키고 쌓여 가나 사람들의 사람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 옷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어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아프리카 최대 중고시장인 칸타만토가 있다. 이곳에는 일주일에 한번 컨테이너가 도착하는데, 그 안에는 내용물이 보이지 않도록 잘 감싼 포대가 잔뜩 담겨 있다. 포대 속에 들어있는 건 다름 아닌 '헌옷'이다. 헌옷은 칸타만토 시장의 주요 거래 품목이다. 가나 인구는 약 3000만 명인데, 매주 수입되는 헌옷은 1500만 개에 달한다.

거기에는 대한민국에서 수출된 것도 있다. 참고로 한국은 세계 5위의 헌옷 수출국이다. (1위 미국, 2위 영국, 3위 독일, 4위 중국) 칸타만토 시장의 중고 의류 상인들은 무게에 따라 포대를 사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복불복이다. 어떤 경우에는 팔 수 없는 수준의 헌옷만 가져가기도 한다. 칸타만도에서도 주인을 찾지 못한 약 40%의 옷은 어디로 가는 걸까.

시장에서 1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오다우 강의 풍경은 참담했다. 칸타만토 시장에서 나온 옷 쓰레기들이 집 앞을 가득 메우고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 마을에 위치한 매립지에는 말 그대로 옷무덤이 형성돼 있는데, 소들이 그 위에서 풀 대신 함성섬유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생계를 위해 받아들인 일이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었다.

"중고 시장에 들어온 헌 옷의 40%는 쓰레기가 됩니다. 지역의 폐기물 처리 시스템은 이 모든 쓰레기를 처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쓰레기들이 비공식적으로 처리됩니다. 사람들은 옷 쓰레기를 직접 들거나 작은 수레로 싣고 와서 여기에 버립니다. 시장 근처에서 불태우기도 하죠." (엘리자베스 리켓, 환경운동단체 The OR Foundation 대표)

의류 폐기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가나에서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환경 운동가 엘리자베스 리켓은 가나 아크라의 옷 쓰레기 문제는 "북반구의 패스트패션, 과잉 생산, 과잉 소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팔릴 양보다 더 많이 생산하고 입을 양보다 더 많이 구매"하다보니 "옷들을 배출할 곳이 필요하게" 됐고, "중고 의류 거래가 바로 그 배출구가 된 셈"이라는 설명이었다.

또, 헌옷의 재활용에 대한 허상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헌옷이 자선 사업에 사용되거나 재활용될 거라 생각"하고 안심하지만, 실제로 헌옷의 대다수는 칸타만토 같은 지역으로 실려오게 되고 그리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우리는 옷을 버릴 때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헌옷 수거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헌옷 수거함에 모인 수많은 헌옷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바로 수출업체이다. 이곳으로 모여든 헌옷 중 빈티지 매장 등 국내에서 유통되는 옷은 단 5%에 불과하다. 95%의 헌옷이 수출된다. <환경스페셜> 제작진이 찾아간 공장에만 하루에 40t에 달하는 헌옷이 모이는데, 전국에 수출업체가 약 1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모두 합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다.

대한민국의 헌옷은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인구 수 29구의 대한민국에서 어째서 이토록 많은 헌옷이 나오는 걸까. 1980년대 1인당 옷 구매량은 현재의 1/5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더 많은 옷을 더 저렴하게 가질 수 있게 되면서 마치 옷을 일회용품처럼 다루게 됐다. 현재 1인당 연간 옷 구매량은 68개에 달하고, 구매한 뒤 한번도 입지 않고 버리는 옷도 12%나 된다.

하지만 옷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염색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과 130도 이상이 열이 필요하다. 패션 산업이 소비하는 물은 전체 산업 분야가 소비하는 물의 20%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합성 섬유 옷의 원료가 페트병과 같은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눈으로 보이는 폐플라스틱 같은 경우는 우리가 노력해서 수거를 하면 돼요. 하지만 (폐플라스틱이) 나노 플라스틱으로 이미 분해되면 이걸 수거하고 회수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전남대학교 생물학과 김응삼 교수)


이번에는 중국에 이어 의류 생산 2위인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로 가보자. 수천 개의 의류 공장이 있는 이곳의 사정도 가나의 아크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운하에는 섬유 쓰레기가 켜켜이 쌓여 있고, 강은 이미 죽어버렸다. 우리가 손쉽게 옷을 사고 버릴 때, 자연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카의 부리강가강은 한쪽이 잉크를 풀어놓은 것마냥 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염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널리스트 리차드는 다카이 수많은 염색 공장에서 배출하는 독극성 화학 물질이 부리강가 강으로 고스란히 흘러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배수구에서 검은 폐수가 여과 장치 하나 없이 강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입는 옷의 '환경 가격'은 얼마일까. 흰색 면 티셔츠를 만드는 데 2700리터의 물이 필요한데, 한 사람이 3년간 마실 물의 양과 맞먹는다.

청바지 한 개를 만들 때 배출되는 탄소량은 33kg이나 된다. 이는 자동차로 111km를 갈 때 배출되는 양과 같다. 1년에 만들어지는 청바지는 40억 벌이다. 패션 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수는 전 세계의 항공기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고, 전 세계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옷을 계속 만들어도 되는 걸까.

"NO FASHION ON A DEAD PLANET(지구가 죽으면 패션도 없다)." 영국 런던에서는 패션쇼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패션 산업을 기후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지금처럼 많은 옷을 생산하면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어렵다는 것이다. 2019년 8월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패션 산업의 환경 오염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후 유럽 패션업계에서는 친환경이 피할 수 없는 화두로 떠올랐다.

식물성 소재를 이용한다거나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해 옷을 만드는 방안들이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받은 소재는 '폐페트병'이었다. 국내에도 폐페트병으로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그러자 폐페트병의 가격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실질적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닌데, 그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생산을 조절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팔리지 않는 옷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프랑스처럼 재고 상품을 소각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팔리지 않는 옷은 재고가 되고, 재고는 폐기한다는 패션계의 오래된 고정관념을 깨는 것, 거기서부터 지속가능한 패션은 시작될 것이다.

내레이션을 맡은 김효진은 "곧 무너질 옷 무덤을 앞에 두고도 매년 1000억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책임지지 않는 풍요는 오래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 자리한 어두운 그림자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값싼 옷을 샀던 즐거움 뒤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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