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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심부름도 모자라 폭언까지…'환자 갑질'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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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6 09:35 조회 3,101

과도한 민원에 ‘신음’

“택배·음식 병실에 갖다 달라” 요구 예사

43% ‘언어폭력’·12% ‘물리적 폭력’ 경험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전신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코로나19 병동 의료진은 감염에 대한 공포를 뒤로한 채 매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환자와 환자가족들의 폭언과 욕설, 무리한 요구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6년 경력의 최선미 간호사(가명)는 “격리구역에서는 치료도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기저질환에 대한 치료, 예를 들어 물리치료 같은 걸 요구하시기도 한다”면서 “해드릴 수 없다고 하니 ‘그것도 못해주냐’며 역정을 내셔서 담당 간호사가 울기도 했다”고 전했다. 입원 환자 중 폐렴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특별한 치료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는데 ‘왜 입원시켜놓고 아무것도 안 해주느냐’며 화를 내기도 한다.


격리된 환자에게 개인 물품뿐 아니라 집에서 사용하던 의료기기 등을 넣어달라는 요구도 많다. 문제는 전달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간호사가 의료기기 하나하나 관리까지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나 치료 경과 정도만 얘기해줬다면, 이제는 간병인이나 가족이 하던 환자 수발뿐 아니라 세세한 일상까지 전해주는 등 보호자 응대 업무가 배로 늘었다.


지난 11일 경기 남양주시 현대병원 코로나19 전담병동 중환자실에서 환경미화원이 전신 방호복을 입은 채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다. 남양주=하상윤 기자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고령환자가 많아 낙상 위험에 대한 걱정이나 보호자들의 요구가 많았던 반면 최근엔 젊은 환자들이 늘면서 과도한 민원과 불만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강선미 간호사(가명)는 “젊은 환자분들이 ‘왜 빨리 안 해주냐’부터 시작해서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것 다 아는데 왜 이거 안 챙겨주냐’, ‘식사가 맛이 없다’, ‘택배시킨 거 왜 바로 안 갖다 주냐’고 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외식을 많이 하던 분들이라 그런지 외부 음식을 넣어달라고 컴플레인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면서 “코로나 증상 중 하나인 설사나 구토 때문에 식이조절을 철저하게 해야 하는데도 병원 밥 못 먹겠으니 외부 음식 반입해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김재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 간호사도 “인터넷에서 샴푸 20개를 주문해놓고 (병실에) 넣어달라고 하는 등 과도한 요구를 하는 분들이 계신다”고 말했다.


강 간호사는 “보호구를 하지 않고 직접 대면해도 저희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이런 민원이나 항의 때문에 울었던 간호사가 많다”고 말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의료진 ‘덕분에’라고 치켜세우고는 방역수칙 무시한 채 돌아다니고, 확진돼 입원하면 의료진에게 함부로 하는 분들을 보면 허탈하다”고 꼬집었다.

여름에는 땡볕에서, 겨울에는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는 임시선별소 사정도 마찬가지다. 권선자 수원병원 임상병리사는 “검체 체취를 위해 바늘을 코에 넣을 때 반사적으로 피하셔서 저희가 엉뚱한 곳을 찌르는 경우가 생긴다”면서 “그러면 막말을 하신다. 저희도 한 가정의 아내이고, 엄마이고 또 딸이기도 한데 심한 욕설을 많이 하고 가신다. 마음에 안 든다고 CCTV를 부숴놓고 가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대한간호협회와 공동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환자 또는 환자가족으로부터의 ‘갑질’ 경험 여부’(중복 응답)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3.3%가 ‘고성, 욕설, 폭언 등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업무 외 부당한 요구’를 받았다는 응답이 34.7%였으며, ‘물리적 폭력(물건 던지기 등)’을 경험했다는 간호사도 11.7%나 됐다.

위험에 가까워질수록 가족과 이웃,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코로나 의료진의 숙명이다. ‘코로나 영웅’이라며 박수치던 이들도 막상 방호복을 벗고 다가가면 뒷걸음질치곤 한다.

권 임상병리사는 “퇴근하다가 근처에서 장을 보는데 저희 병원에 다니시던 환자분이 저더러 ‘확진자를 보는 사람이 이러고 돌아다녀도 되냐’고 하시는데 정말 섭섭했다”면서 “사실 환자나 가족, 동료에게 피해줄까봐 저희가 더 많이 주의하고, 소독도 더 열심히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스 사태 때도 중환자실을 지켰던 최유란 수간호사(가명)는 “메르스 때 저희 아이가 중학생이었는데 교감선생님이 아이를 따로 불렀다. 내가 여기 근무한다는 이유로. 그런데 우리 아이는 저한테 말을 안 했다. 엄마가 힘들까봐”라면서 “학부모 모임도 배제됐는데 그 마음도 아니까, 이해하려고 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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